단청의 색조는 기본적으로 음양오행 사상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정색을 사용하고, 상생과 상극의 개념에 따라 혼합색을 만들어 채색한다. 이러한 색조는 고대로부터 적립되어 조금씩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고대 삼국시대의 단청에서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단청 색조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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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단청 색조
고구려의 단청 색조
고구려의 단청 색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분벽화의 유례를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까지 약 90여 개가 발굴된 고구려 벽화고분에는 약 1500년 전 칠이 된 당시 색조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 고구려 시대의 화려한 색채 감각을 확인하고 연구할 수 있다. 광복 이후 많은 고분이 발굴되며 채색된 빛깔이 급속도로 퇴색되기 시작했지만, 안악 2·3호분, 수산리 벽화고분, 쌍영총, 퉁거우 5회분 등의 채색은 여전히 그 화려함을 유지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용된 채색의 종류를 살펴보자면 흑 · 적 · 황 · 청 · 자 · 녹 · 백 등을 기본으로 황토색과 같은 갈색 · 청록 계열의 다양한 혼합색이 사용되었다. 또한 적색은 다시 적 · 주 · 홍색 등으로 구분되고, 다른 색들도 명도와 채도의 변화가 풍부하여 다양한 색의 대비를 보여준다.
수산리 고분벽화에는 목조건축의 기둥, 창방, 대공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기둥과 주두 공포 부분은 적색과 흑색으로 도채 되어 있고 기 기둥과 주두 사이의 연화 받침은 백색과 분홍색 계열을 사용했다. 각 부재의 명도가 강약의 대비로 이루어져 있으며, 창방과 중방 그림의 단청 문양 또한 고명도와 저채도의 색조로 채색하여 기둥과의 확실항 명도 및 채도의 대비를 만들었다.
안악 2호분의 건축 부재 그림에서도 색의 대비가 표현되어 있다. 기둥과 주두, 소로, 도리와 같은 부분은 적갈색과 흑색으로 어둡게 하고 공포와 창방, 대공 등은 백색과 황색으로 채색한 뒤 가는 먹선으로 문양의 윤곽만을 드러낸다. 그로 인해 부재와 부재의 명도 대비가 뚜렷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단청 채색에서는 보색의 대비도 나타나고 있다. 지안현 통거우 5회 분과 4회분의 사방 벽 인동당초문이 연한 청록색과 주홍색으로 채색된 것과 북벽 인동문 내부의 팔메트잎의 연녹색 채색 후 강한 적색으로 윤곽선을 그어 준 것은 강한 보색의 대비를 연출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안쪽 네 벽에 묘사되어 있는 선인들의 옷 색이 석청과 주홍으로 도채 되면서 역시나 뚜렷한 보색의 대비가 돋보인다.
백제의 단청 색조
백제의 건축에 사용된 채색의 유례는 공주 송산리 고분벽화와 부여 능산리 고분벽화에 남아있다. 두 고분벽화에 남아 있는 채색 그림이 많지는 않지만 미약하게나마 전해지는 것으로 당시의 단청 색조에 대해서 추측해 볼 수 있다.
공주 송산리 고분벽화에서는 전축분으로 진흙을 칠해 밑바탕을 만든 후 사신도 중 하나인 주작도를 그렸다. 부여 능산리 고분벽화는 석실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돌에 직접 사신도와 비운연화도를 그려 넣었다. 백제는 고구려와 유사한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고분벽화에 표현된 사신도의 채색 색조로 보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건축물에 단청 채색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발받침과 베개에 각각 옻칠과 적색으로 도채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당시에 일반 기물에까지 단청 채색이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단청 색조
신라의 단청 색채의 특성은 경주 신무왕릉으로 추정되는 삼릉석실 고분에 남아있는 벽화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삼릉석실 고분은 문양없는 는 단색으로 채색되었다. 석실은 12폭으로 이루어졌는데 주로 주 · 황 · 백 · 군청 · 감청의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하였다. 감청색은 흑색에 가까운 색으로 이해되며 다섯 가지 색채의 사용은 오행성의 방위신사상과 일치되는 표현법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고려시대 단청 색조
고려시대의 단청 색조는 체계적인 배색이 이루어지기 시작해 오늘날의단청 색조의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단청 유물은 당시의 채색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제작된 각종 불화와 조선 초기까지 전해진 고려시대의 건물 단청 채색을 통해서 당시의 색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려시대의 단청 색조를 확인 할 수 있는 <영조법식>에는 모든 문양에 2빛 도채가 이루어졌으며, 최고 3빛을 도채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청 · 적 · 녹 · 황 · 백 · 흑의 기본색을 혼합하여 다양한 색을 만들어 사용함과 동시에 강한 원색의 대비로 화려하게 의장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 건축물로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부석사 조사전 등에서 감지되는 단청의 색조는 오늘날의 단청 색조와 대체적으로 흡사하다. 건축물 외부의 기둥이나 난간 부분에 석간주와 같은 적색계통의 안료를 사용하여 무게감을 주고, 추녀와 처마 혹은 공포 부분에는 녹색과 청색계열의 색채를 사용해 푸르른 자연과 어우러지는 형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법칙을 '상록하단'이라는 자연색 대비라고 부른다. 고려시대 또한 먹선과 분선을 사용하여 각 문양을 강조함과 동시에 색의 명시성을 상승시켰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시대 단청 색조
오늘날 우리나라의 단청 색조는 조선시대에 비로소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단청 색조는 조선 초기의 건축물에서 확인되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물에서는 극도로 화려한 배색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와 달리 건물 내부와 외부의 배색을 달리했는데, 외부에는 명도가 높고 화사한 오렌지색 계열의 등색과 황색을 사용하고 실내에는 녹색과 청색을 주로 사용해 비교적 차분하고 고아한 느낌으로 채화했다. 단색 계열의 그라데이션 빛 단계는 고려시대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였고 더욱 발전시켜 거의 모든 색의 계열에 3빛의 배색을 적용했다.
조선시대에 주로 사용된 단청 안료는 장단· 주홍· 황 · 석록 · 석청 · 석간주 등이며 후기에는 양청과 양록이 수입되어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본 색조에 문과 먹을 혼합해 명도를 조절하거나, 두 가지 이생의 색을 혼합하여 다양한 간색을 만들었다. 문양의 테두리를 먹선과 분선으로 마감하여 문양의 구분을 명확하게 강조하는 것은 이전 시기와 같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고려시대의 단청에서 볼 수 없던 '휘'라는 색대가 머리초에 추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휘는 건물 의장 등급과 부재의 길이에 따라 최소 2단계에서 6단까지 구성되었으며, 색의 배치는 난색과 한색 계열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보색대비의 방식을 따른다.
조선시대의 단청 색조는 오늘날 한국 단청에 거의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이는 회화·조각 ·공예 등의 분야에도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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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 벽회에 사용된 밀타회 채색 기법의 의미와 공정 과정
참고도서
곽동해 지음 · 김동현 감수 < 한국의 단청>, 학연문화사, 2002
임영주, 전한효 편저 <우리나라 단청1>, 태학원, 2007
임영주, <단청>, 대원사, 1991
장기인, 한국건국대계3 <단청>, 보성각,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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