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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론

고구려 고분벽화와 단청 양식의 연계성

by 바아냐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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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대의 단청 양식은 삼국시대 고구려 벽에 그려진 건축 그림, 또는 당시의 건축 형태를 모방한 가옥형 토기 등에서 그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현재까지 확인된 벽화고분만 해도 만주 집안현 일대에 23기, 평양, 안악 일대에 68기 등 대략 91기에 이른다. 이는 고대 건축 단청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분벽화에는 시기별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당시의 목조 건축물의 구조와 이에 따른 다양한 단청 의장 형식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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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의 시기별 양상

 

고구려 고분벽화의 발전 단계는 초기(4세기 중반 ~ 5세기 초반)에는 인물 풍속도, 중기(5세기 중반 ~ 6세기 초반) 인물 풍속도와 사신도, 후기(6세기 ~ 7세기) 사신도가 그려진 시기로 나뉜다. 

 

초기 - 인물 풍속도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된 내용인 인물 풍속도에는 무덤의 주인공과 다양한 배경의 벽화가 공존한다. 우선 석실의 내부에는 기둥과 두공을 그려 묘실을 실제의 목조 건물과 동일하게 표현하고 당초문과 같은 다채로운 무늬로 장식했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 그림에서는 목부재인 기둥, 주두, 두공, 도리 등이 묘사되어 당시 건물의 형식이 재현되었다. 또한 성곽, 부엌, 마구간, 외양간, 우물 등 각종 용도의 시설물들도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사방 벽에는 집안 생활 풍속도가 그려져 있는데 가족과 측근, 시중 및 호위 무사 등 남녀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고 그 내용은 행렬, 사냥, 씨름, 전쟁, 무악 등이 주류를 이룬다. 무덤 입구에는 문지기 그림, 천장에서는 일월 성신과 비운, 하늘 등 천상의 세계 혹은 내세의 상징적 의미가 담긴 형상이 묘사되어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고분으로는 각저총, 마선구 1호분, 안악 2호분, 감신총, 덕흥리 고분, 용강대총, 수산리 고분 등이 있다. 

 

중기 - 인물 풍속도와 사신도

 

인물 풍속도와 사신도가 모두 표현된 고분의 벽화들은 전기에 비해 더욱 복잡하고 다채롭다. 전기와 같이 실내를 목조 건물처럼 표현했는데, 쌍영총과 팔청리 고분의 경우는 실제로 무덤의 내부에 기둥과 주두, 공포 등의 부재를 축조하여 단청으로 치창하기도 했다. 대안리 1호분의 내부에는 창방에 해당하는 부재를 설치하고 그것을 받쳐든 장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무덤의 문 입구에 수호신을 의미하는 수문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석실의 네 벽면에는 무덤 주인공의 생활상이, 천장에는 비천과 사신 등의 천상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종교화의 내용도 더욱 구체화 되었다. 지안현 장천 1호분은 예불도와 공양도 및 신선도를 통해 불교와 도교 신앙을 반영하였다. 이 시기의 사신도는 생활 풍속도가 묘사된 벽의 윗부분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사신은 방위신으로 청룡, 백호, 현무, 주작, 황룡의 다섯 신수가 있는데 흔히 황룡을 뺀 나머지를 '사신'이라 칭한다. 방위신 사상은 음양오행설 및 28 수법과 관련된 것이다. 28개의 별자리를 중앙, 동, 서, 남, 북의 다섯 방향으로 나누고 그 별자리들의 모양을 따서 환상적인 신수를 만든 후 이를 숭배하는 것이 방위신 사상이다. 

 

후기 - 사신도

 

사신도 고분은 벽화의 주제가 사신도로 이루어진 벽화고분으로 무덤 주인의 유해가 안치되는 현실 사방벽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크게 도채하였다. 일부 벽화 고분에서는 벽화고분에서는 벽면에 사신도를 그리고 여백에 산수, 구름, 인동당초, 화염무늬 등을 가득 그려 마치 장식 무의 바탕에 사신도를 그린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시대와 마찬가지로 연도에는 수문장을 빼놓지 않았으며 벽 모서리에는 굄돌을 받쳐든 장사를 묘사하기도 하였다. 천장 복판에는 황룡 또는 연꽃 무늬를 그렸고 투팔 천장의 굄돌 측면 부재에는 일월성신, 산수, 나무, 비천, 수금, 봉황, 연꽃, 구름, 용, 당초 문양 등 다채로운 장식 무늬를 치밀하게 장식하였다. 대표적인 고분으로 진파리 1호분, 퉁거우 사신총, 강서대묘, 중묘 등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천장부 단청

 

고분벽화의 문양과 단청 양식의 연계성

 

고구려 고분벽화 표면의 대표적 의장 문양은 비단(금문), 당초문, 연화문으로 오늘날까지 단청의 중요 의장 양식으로 이어져 왔다.

 

금문

 

고분벽화에서는 벽면에 장식된 귀갑문, 수엽상문 등에서 금문의 양상을 볼 수 있다. 비단무늬의 꽃무늬들은 근래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의 단청에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단청의 양식이 삼국시대 부터 전해져 왔음을 명확하게 해주는 근거가 된다.

 

또한 위와 같은 무늬의 양상은 고분벽화에서만 아니라 당시의 금속 장신구나 칠기공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단청의 조영 범위가 건축뿐 아니라 소규모 공예품에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문이 장식된 위치는 2층 난간으로 현재 금문이 단청되고 있는 평방, 창방과 유사해 금문 조형의 시원을 보여준다. '안악 2호분'의 현실 벽이나 천장 굄돌 측면에 그려진 기하 문양, '쌍영총' 현실 천장 굄돌에도 그와 유사한 문양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의 단청 양식과 상당히 흡사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당초문

 

고분벽화에는 각종 당초문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우리 말로 '덩굴무늬'를 의미한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덩굴무늬는 크게 구름 당초문과 인동 당초문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 밖에 기하문이나 초화문을 이용한 각종 당초문도 장식되었다. 각 시기에 따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초기 한나라 계통의 구름 당초문, 중기 S자 패턴의 구름 당초문에서 서서히 서방의 의장 요소인 아칸더스양식이 부가되기 시작한 형태, 후기 구름 당초문이 완전히 사라지고 인동, 초화, 기하 무늬 등을 이용한 당초문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형태로 나누어진다. 

 

후기의 '인동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한 식물 장식무늬이며 일찍이 건축, 공예 장식에서 우수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통거우 사신총과 통거우 5호분, 통거우 5회분 4·5호분, 강서중묘와 강서대묘의 벽면 윗부분 가로부재에 팔메트형을 좌우 대칭으로 합성한 인동당초문이 화려하게 변화해 보상화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연화문

 

연꽃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당초문과 함께 가장 많이 장식된 문양이다. 원래 연꽃은 고대 민속에서 다산, 풍요, 행운, 번영, 장수, 건강, 명예와 여성의 생식 또는 대지와 그 창조력, 신성 및 영원 불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보통 불교의 꽃으로 여겨지나 중국에서는 이미 불교의 전래 전부터 진흙탕에서도 물들지 않고 청아하게 피어나는 연꽃을 세속을 초월한 군자를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민간에서는 '연생귀자'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빠른 시기에 아들을 연이어 얻는다는 의미로 연꽃의 생태적 속성에서 비롯된 말이다. 식물들은 대개 꽃이 먼저 피고 그 꽃이 지고 난 후 열매를 맺는데 반해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성립되면서 부터 부처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연꽃이 피었다고 전하는데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 왕이 건립한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대탑에 새겨진 연화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연화문이 더욱 유행했고 마침내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또한 극락세계를 신성한 연꽃이 피어나는 연못으로 여기고 사찰 경내에 연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연꽃은 분명 생명 창조의 깊은 상징성을 부여 받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연꽃이 망자의 시신이 안치된 고분의 현실 천장에 장식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망자가 극락정토에 환생해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연꽃을 장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 벽화고분 가운데 가장 시기가 이른 안악 3호분의 현실 천장과 벽, 감신총의 천장과 수산리 고분 벽면의 연화문, 장천 1호분의 유일한 예불도와 쌍영총, 덕화리 1호분 진파리 1호분에서 연화문의 조형을 볼 수 있다. 

 

 

고분벽화의 채화기법과 단청 양식의 연계성

 

고구려 고분벽화는 그을음, 황토, 흙 등의 안료가 사용되었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벽면에 회를 바르고 완전히 건조한 후에 채색하는 세코프레스코 기법과 유사한 '밀타회 채색 기법'을 사용했다. 세코 프레스코 기법에서는 템테라를 석회수로 개어 자유롭게 사용했는데 동양에서는 밀타승 즉 산화납을 추출해 만든 기름에 안료를 혼합하여 썼다. 이는 서양의 유화와 비슷하며 자유로운 묘사와 활달한 필치를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채색 방식은 먹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안에 먹이나 색으로 메우는 '구륵법'을 썼는데 이는 오늘날 사찰 벽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또는 밑선을 긋지 않고 바로 채료를 사용해 명암 없이 윤곽선만 묘사하는 '백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세부를 집약해서 특징만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간필묘적 기법과, 대상의 세부를 치밀하게 표현하는 세화적 수법도 사용했다. 

 

주요 색채는 흑, 녹(청록색), 청(군청색), 적(주, 진사 유화수은, 제이산화철), 황(황토, 각철황), 백(태운 조개, 백아토) 등의 안료를 사용하였다. 음양오행사상이 반영된 색채의 구성으로 농담의 변화가 풍부해 다양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진파리 4호분 벽화에서는 금분을 사용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고대의 색채 개념은 오늘날 단청의 색채 구조와 매우 밀접한 연계성을 드러내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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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곽동해 지음 · 김동현 감수 < 한국의 단청>, 학연문화사, 2002

임영주, 전한효 편저 <우리나라 단청1>, 태학원, 2007

임영주, <단청>, 대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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