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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론

중국 건축 문화의 역사를 통한 한국 단청의 기원 이해하기

by 바아냐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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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단청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 우리나라 단청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발전되어 왔는지 공부해 보는 시간입니다. 

 

인류가 원시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채색 그림이 출현하는 시기는 약 2만 년 전으로 동굴 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구석기시대 말기 원시 인류의 동굴 벽화나 바위에 새긴 그림들은 이후 지상 건물에 그려졌던 도식화된 단청과 같은 목적으로 그려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정 부분 장식적인 역할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단청의 출발점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역사적 기반 아래에서 단청은 오랜 기간 계승되고 보전되어 우리 민족의 '미의식'을 드러내는 상직적 행위로 발전 되었습니다.

 

 

한국 단청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단청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발달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중국 건축 문화의 발자취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건축은 동양 건축 문화권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중국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한민족에 의하여 시작된 중국계 건축 문화는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남쪽은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이르며 동쪽으로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북쪽으로는 몽골,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 까지 방대하게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 대륙의 동쪽 연안에 인접해 있어 고대로 부터 지속적으로 중국 건축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 고유의 토착 문화와 중국의 건축 문화가 융합되어 마침내 한국적인 건축 양식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단청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의 건축 문화권 내에 속하는 중국 건축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중국 건축 문화의 역사 속 단청의 기원

중국 건축에서 장식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역자적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한漢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자료는 모두 목곽묘의 형식이 쇠퇴한 후 나타나는 석실묘, 전실묘의 벽면화이며 벽면의 부조 장식 또는 화상석이나 석궐 등을 장식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림이나 부조 장식물들은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 등 도교적인 사상이 유행하였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일월성신과 신선영괴, 사신영수, 상서금수 등의 그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단청 유물은 중국 서한 시대 묘의 부장품으로 가옥형 토기에 채화된 고대 단청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 토기는 적색, 백색, 흑색 등을 사용해 서까래 부리와 주두벽 등에 단순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 되었습니다. 고대 건축의 패턴화 된 단청 문양이 장식되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중국 고대 단청의 매우 중요한 유물로 4세기 중반부터 조영되기 시작한 중국 간쑤성 둔황현의 불교 석굴 유적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600여 개의 석굴 가운데 단청이나 벽화가 도채 된 동굴이 무려 456개소나 됩니다. 그중 제245 굴 같은 곳에는 천장과 사방 벽 불상, 불단 등에 화려하게 장식된 단청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단청과 관련된 가장 오랜 기록은 기원전 진나라에서 편찬된 「여씨춘추」에서 기록된 '지교단칠'이라는 용어입니다. 「여씨춘추」의 다른 내용들 가운데는 '단칠'과 '염색'이라는 용어도 등장합니다. 이는 채화의 재료를 말하는 것으로 전한 시대 「예기」에 도 기록 되었으며, 「회남자」에도 인용이 되었습니다. '단청'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사료 또한  「회남자」 제 20권입니다.

 

단청안료-사발-붓
출처, 픽사베이, 단청 안료, 붓, 사발

 

단丹과 칠漆의  의미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

 

'단칠'이라는 단어의 해석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단칠'을 단지 붉은 칠의 일종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료를 통한 고증을 바탕으로 볼 때 '단'과 '칠'은 분리하여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에 타당성이 뒷받침 됩니다. 「회남자」 제20권을 보면 '단청과 아교와 칠이 같지 아니하나 모두 사용되는 것은 각기 적소에 제 물건이 마땅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사료를 통해 「여씨춘추」에서의 '지교단칠'의 의미를 '기름, 아교, 단청, 옻칠'이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옻칠을 사용한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이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칠공예품을 발견하였습니다. 전국시대의 고분에서도 최상급의 칠기인 의자, 쟁반 등 각종 칠 공예품이 발굴된 바 있습니다. 포괄적 의미에서 칠이 단청의 일종임을 전제한다면, 단청의 기원은 상고사를 훌쩍 뛰어넘어 유구한 역사를 지니게 됩니다. 

 

고대인들에게 섬세한 옻칠 작업은 목조 건물 전체에 도장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면, 칠 작업이 소형 공예품에 한정된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조 건축물에는 재료의 확보가 용이하고 다루기 쉬운 안료와 아교를 사용한 '단청'이 가장 적합한 행위였다고 추정합니다. 칠과 단청이 분명 다른 성분이긴 하지만 현재에도 옻칠과 채색을 동시에 진행하는 단청이나 불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하나의 범주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며 단청의 기원을 칠의 기원인 선사시대로 정의하는 것에 일리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한국 단청의 기원

 

우리나라에서도 기원전 1세기 경 철기시대 유적인 경남 의창군 다호리에서 술잔, 칠붓, 칠검 등 다량의 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한대의 건축 제도와 풍습이 한반도에 주둔한 한사군, 즉 낙랑 문화의 영향으로 고구려의 건축 문화에 직접적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이는 채협총의 채화칠협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신라 호우총의 목심칠면, 백재 무령왕릉의 채화족좌 · 채화두침, 천마총의 새 모양 칠자, 안압지의 각종 칠그릇이 출토되어 칠의 기원, 즉 단칠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목조 건축의 '단청'이 이루어졌을 시기는 고대인들의 주거 형태의 변화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삼국시대에는 건축물에 나무를 깎고 다듬어 짜 올리고 덩굴의 가지처럼 '촛가지'를 조각하여 칠하거나 온갖 인동덩굴무늬를 새기고 그려 장식하였습니다. 목부나 벽체, 천장을 단청하는 등 새로운 건축 기법과 양식에 따른 '단청'이 도입되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단청의 가장 오래된 유구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삼국시대 여러 벽화 고분을 통하여 그 양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당시의 건축 양식과 단청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다수 남아 있어 한국 단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고분 벽화는 건축사, 회화사, 생활사 등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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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곽동해 지음 · 김동현 감수, <한국의 단청>, 학연문화사, 2002

임영주, 전한효 편저, <우리나라 단청1>, 태학원, 2007

임영주, <단청>, 대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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