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 단청의 역사 두 번째 이야기로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단청은 어떠한 형태로 발전되어 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료와 유구를 통해 시기별 건축 양식과 그에 따른 단청의 양상에 대해 살펴보자.
고려시대 단청
고려시대에는 우리나라 건축 양식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고려 중기에 송나라에서 들어온 건축 기법인 주심포 양식의 도입과 고려 말기 원과의 교류를 통해 수용된 다포 양식의 도입이 바로 그것이다.
주심포 양식은 기둥의 상부에 가구 구조가 짜이고 처마가 노출되는 연등천장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보를 비롯한 가구재가 건물 내무에 그대로 드러나며 기둥 위 위에만 공포 구조가 만들어지는 형식이다.
다포 양식은 기본적으로 격자 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를 비롯한 모든 가구재가 청장에 감춰지는 형식으로 이들 부재에는 장식적 의장이 전혀 가해지지 않지만 대신 천정에 문양을 넣어 장식한다. 이 다포계 양식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해 화려하고 웅장함의 극치를 이룬다.
고려시대 단청 사료와 유구
「고려도경」은 12세기 전후의 고려 궁전의 규모와 장엄성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단청 장식의 호화로움을 설명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궁실을 수축하기를 좋아하며, 왕이 거처하는 궁궐의 구조는 둥근 기둥에 모난 두공으로 되어 있고 날아갈 듯 연이은 대마루는 울긋불긋 문채나게 꾸몄다"
"난간은 붉은 칠을하고 동화로서 장식하였고 단청의 문양과 채색이 매우 힘차고 아름다워서 다른 전각들보다 뛰어났다"
태조 6년에는 "후량의 사신 윤질이 오백나한을 바치니 해주 숭산사에 두게 하였고, 성종 2년에는 송에서 대요당도, 사직당도, 제기도 등이 들어왔으며, 문종 30년에는 "최사훈을 송에 보내어 상국사 벽면의 그림을 모사시켜 개성 흥왕사 내벽에 그리게 하였다"와 같은 기록도 남아 있다.
고려 시대에는 궁궐 단청 뿐 아니라 당시 불교 사찰의 건축도 극히 화려하였는데, 불교의 흥성에 따라 사찰 건축이 조성되고 고분 벽화가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 중에서 단청 유구를 볼 수 있는 것은 여주 부석사 조사당, 안동 봉정사 극락전, 성불사 응진전 등을 비롯하여 상원사 보광전의 내부 단청, 예산 수덕사 대웅전의 무게 있고 고상한 당시의 단청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 단청 양식의 예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유례로 개성 법당방 고분의 무덤 그림, 공민왕릉 내의 십이지신상 벽화와 천장도, 거창 둔마리 고분 벽화의 주악 천인상이 있다.
고려시대 단청의 색조와 문양
고려시대 단청은 현존 유구를 통해서 볼 때 주로 녹색, 청색의 차가운 색을 바탕으로 하여 먹선으로 구륵법을 사용하는 화법을 사용하였다. 서역과 교류하며 화법에도 영향을 받았는데 주로 아라베스크계 당초문을 단조로우면서도 우아한 격조로 표현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의 벽화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의 불화로 제석, 범천, 사천왕의 6폭 그림이 벽화 보존각 내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이 벽화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것으로 배경은 진한 녹색계의 안료로 칠해져 있으며 주홍, 녹색, 백색, 다자, 금색을 주로 사용했다.
조선시대 단청
조선시대에는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의 특징들을 혼용하여 권위를 보이는 건축이 주를 이루었지만 임진 왜란을 계기로 침체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다포 양식이 더 성행하였는데 그에 따라 의장의 무늬와 색채의 화려함이 더해져 더욱 다채로운 단청이 선보여졌다.
조선 초기의 건물에서는 고려시대의 단청 기법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의 대부분이 임란 후 인조 이후의 시기에 재건된 것으로 조선 초기에 이어지는 고격한 맛은 많이 감소되었다. 다포계의 목조 건축물이 많아지면서 문양의 구성과 장식이 복잡하고 다채로운 색조의 대비가 커지며 단청이 극도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것이다.
당시 건물의 외부의 단청 색조는 밝은색 계통의 등황색을 현저하게 증가시켜 장식의 명도를 높였다. 그러나 실내의 단청은 광선의 명도가 외부의 단청보다 낮은 것을 고려하여 주로 녹청색으로 처리했다. 단청의 주요 색조는 장단, 주홍, 양청, 황, 석록, 석간주 등이며, 후기에는 양청과 양록이 수입되어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본 색에 먹과 분(흰색)을 혼합해 명도를 조절하거나 안료의 배합으로 다양한 색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건축물에 따른 단청 양상
조선시대 궁궐과 관아의 단청은 불교사찰과는 조금 다른 권위의 상징과 웅장한 기품을 드러내기 위해 색채의 사용 차이를 두었다. 불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연화 문양도 사용했지만 파련화나 주화 문양의 사용이 늘어나고 수복 강녕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쌍희자 도안, 불자, 금문 등 복합적인 요소의 수용으로 왕실의 호화로움을 뽐냈다.
사찰 단청은 문양의 복잡해 지면서 '휘'라는 색대가 만들어지거나 화려한 금단청 등을 장엄하는 등 다채롭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시대 단청은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단청을 계승하였지만 후기로 갈 수록 복잡화 된 단청 체계로 인해 다소 조잡한 면이 없지 않다.
향교나 서원 등의 유교 건축은 검양하면서도 건실한 의장을 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건축물에는 주도 긋기 단청으로 고상하게 장식하고 성전의 기품을 나타내기 위해 부분적으로 모로 단청을 첨가하여 의례적인 정신을 강조 하였다.
조선시대 단청의 유구
조선시대 단청의 유구는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 강릉 객사문, 장곡사 삼대웅전, 서울 남대문, 정수사 법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개옥사 원통전, 봉정사 대웅전, 송광사 국사전, 무위 사 극락전
중기: 용문사 대웅전, 장곡사 하대웅전, 무량사 극락전, 전등사 약사전
후기: 화엄사 대웅전, 창경궁 명정전, 경복궁 근정전, 경회루, 동대문
한국 단청의 역사3 - 삼국시대, 고려, 조선 역대 단청 기관
한국 단청의 역사4 -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과 단청 화원의 활동
참고도서
곽동해 지음 · 김동현 감수 < 한국의 단청>, 학연문화사, 2002
임영주, 전한효 편저 <우리나라 단청1>, 태학원, 2007
임영주, <단청>, 대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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